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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아산의 2024시즌 개막전 유니폼 @한국프로축구연맹

(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 잔

“나중에 보니 지금까지는 파란색으로 유니폼을 썼다더라. 그렇다면 그건 더불어민주당 색깔이지 않나? 그렇다면 그 문제는 지금껏 왜 지적하지 않았나?”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화가 단단히 났다. 지난 9일 이순신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던 하나은행 K리그2 2024 2라운드 충남아산과 부천 FC의 경기 이후 불거진 논란 때문이다. 파랑과 노랑을 그간 팀 컬러로 내세웠던 충남아산은 이날 부천과 홈 경기에서 유니폼과 배너 등에 서드 키트 색상인 붉은색으로 시작해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외압 의혹까지 불거지자 김 도지사는 13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이 논란에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모든 세상이 축구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긴 하다. 의외로 세상 사람들은 축구판에서 나름의 불문율로 지켜온 것에 대해 잘 모른다. ‘명예직’임을 강조했던 김 도지사뿐만 아니라 최근 충남아산을 책임지게 된 이준일 충남아산 대표이사도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했다. 축구팬들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해명일 수 있지만, 일견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김 도지사의 저 주장은 다소 핀트가 빗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경쟁하는 당의 색깔인 파란색을 언급하며 그때는 왜 아무 말이 없었느냐고 반박하는 건 축구계에서는 억지로 느껴질 수밖에 없어서다.

유니폼이 붉은색으로 바뀌자 시위를 벌이는 카디프 시티 팬들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
유니폼이 붉은색으로 바뀌자 시위를 벌이는 카디프 시티 팬들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
붉은 팀 컬러로 바꾼 빈센트 탄 구단주를 독재자라 비난하는 카디프 시티 팬들 
붉은 팀 컬러로 바꾼 빈센트 탄 구단주를 독재자라 비난하는 카디프 시티 팬들 

축구에서 팀 컬러는 그 클럽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유럽에서는 유니폼과 엠블럼에 정치적 방향, 혹은 종교적 색채를 담는 경우가 상당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럽에 비해 이런 경향이 흐릿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 컬러가 정체성과는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대다수 FC 서울의 팬은 그들이 왜 ‘검빨(검정+빨강)’ 세로 스트라이프를 기준으로 유니폼을 삼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건 ‘검빨’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파검(파랑+검정)’도 무슨 연유로 이런 색깔을 정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지금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팀을 상징하는 컬러로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 충남아산의 파랑 노랑 컬러도 마찬가지다. 팀을 시작하면서 이 컬러로 팀이 첫 걸음을 뗐고, 어디에서든 이 컬러를 충남아산은 상징으로 여긴다. 

이 문화를 가벼이 여겼다가 엄청난 반발을 산 경우가 축구 역사에 상당히 많다. 과거 카디프 시티의 사례를 들겠다. 스스로를 ‘블루 버드’라 부를 정도로 파랑색에 정체성을 크게 부여했던 카디프 시티 팬들은 말레이시아 출신 부호 구단주 빈센트 탄이 난데없이 붉은색으로 바꾸고 심지어 팀의 상징이었던 제비를 엠블럼 구석으로 밀어내고 붉은 용을 새롭게 내세우자 크게 분노했다.

붉은색 새 엠블럼 밑에서 옛 엠블럼을 내세우는 카디프 시티 팬들
붉은색 새 엠블럼 밑에서 옛 엠블럼을 내세우는 카디프 시티 팬들

김 도지사가 화가 났다는 그 비방 메시지가 담은 플래카드, 그 시절 카디프 시티의 안방인 카디프 시티 스타디움에도 내걸렸다. 팬들도 유니폼 색상만 달라졌을 뿐, 얼마 전까지 응원했던 팀과 선수들이 피치에서 뛰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컬러는 단순한 이슈가 아니다. 누군가의 의지로 블루에서 레드로 바뀐 그 순간부터 팬들은 그 팀을 자신이 응원했던 팀으로 간주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 팀처럼 안 느껴져서다. 결국 카디프 시티는 다시 예전의 블루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과거 인천 유나이티드는 ‘파검’ 스트라이프 컬러를 버리고 푸른색에 붉은색이 섞인 밋밋한 유니폼을 썼다가 엄청난 반발을 샀다. 이때 기존 ‘파검’ 컬러 때문에 등번호가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파검’이 왜 인천의 상징이냐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더욱 팬들을 자극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강력하게 팬들의 반발을 샀던 인천은 결국 예전의 파검 컬러로 돌아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축구 문화에 문외한인 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한낱 유니폼 색깔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화를 내는 게 말이 되는가 싶은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팀 컬러와 관련된 정체성은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자 이름과도 같다. 

그래서 외부에서 어설픈 이유를 들이대며 바꾸려드는 시도는 팬들에게 마치 ‘강제 창씨개명’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후에 자꾸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접근하면 도리어 팬들의 역린을 건드는 것이다. 그래서 팀 컬러는 한번 정할 때 신중해야 하고 바꾸려면 많은 이들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한다. 

다시 충남아산 이슈로 돌아가겠다. 김 도지사가 야당을 언급한 건 너무도 엇나갔다. 충남아산 팬들이 난데없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홈 개막전은 치른 것에 화가 난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내 팀’ 같지 않아서다. 

파랑 노랑 컬러는, 서서히 파란색으로 바뀌어갔던 충남아산이 날 때부터 가졌던 색이다. 충남아산 팬들은 여기서 클럽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다. 충남아산은 원래 그렇다고 인식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가 함유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서드 키트’라는 나름의 합법적 장치를 악용해 다른 색깔로 바꿔버렸다. 

이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이유에 대해 여러 해명이 나왔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상징생 혹은 국가대표팀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건 누군가가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의미를 부여했을 뿐, 그 어떤 팬들도 이에 공감하지 않았다. 팬들은 바로 이 지점에 화가 난 것이다. 

혹자는 종종 왜 이 팀의 유니폼이 어느 당 색깔이냐 라는 식으로 접근하곤 한다. 왜 현재 집권당 색깔이 아니냐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비단 충남아산만의 일이 아니었다. 축구 문화를 모르니 그럴 수가 있다. 납득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순 있다. 하지만 색깔은 죄가 없다. 팀 컬러도 죄가 없다. 그렇게 보고 손을 대려는 이들의 눈에 낀 색안경이 문제다.  여당이든 여당이든, 팬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내 팀의 색깔이 바꾼 것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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